살다 보면 분명 옳은 선택이라고 믿었던 일이 시간이 지나면 흔들릴 때가 있습니다. 저는 대학 시절, 친구를 돕는다는 이유로 누군가와 크게 다툰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당연히 정의로운 행동이라 여겼지만, 시간이 흘러 생각해 보니 제 방식이 오히려 상황을 더 꼬이게 만들었던 건 아닐까 하는 후회가 남았습니다. 그 경험은 저에게 '옳음'이란 언제나 주관적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애니메이션 코드기어스 속 인물들을 보면서 그때의 일이 겹쳐 떠올랐습니다. 작품 속 선택들은 언제나 옳음과 그릇됨의 경계에서 이루어졌고, 인물들은 그 경계 위에서 끊임없이 흔들렸습니다.
정의는 누구의 눈으로 결정되는가
작품 속 인물들은 모두 자신이 옳다고 믿는 신념을 바탕으로 움직입니다. 어떤 이는 더 나은 세상을 만들겠다는 명분을 내세우고, 또 다른 이는 가까운 이를 지키기 위해 행동합니다. 그들의 마음만 놓고 보면 이해할 수 있고 충분히 납득할 만한 이유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각자의 정의가 서로 정면으로 부딪히면서, 한쪽이 정의라 주장하는 것이 다른 쪽에겐 부당함으로 보이기도 한다는 점입니다.
저는 이 장면들을 보면서 "정의란 결국 누구의 눈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상대적 개념일 수밖에 없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현실 속에서도 이와 비슷한 상황은 흔합니다. 예를 들어 회사에서 추진하는 변화가 어떤 직원에게는 커리어를 발전시킬 좋은 기회이지만, 다른 직원에게는 불안정함을 불러오는 위협일 수 있습니다. 사회적 담론도 마찬가지입니다. 한쪽은 공정함을 내세우지만, 다른 쪽은 그 공정이 자신에게 불리하게 작동한다고 느끼기도 하지요.
코드기어스는 이처럼 정의가 결코 절대적인 것이 아님을 보여주며, 우리로 하여금 스스로 믿는 정의가 얼마나 불완전하고 다층적인 것인지 다시 돌아보게 만듭니다.
목적과 수단 사이의 간극
작품 속 인물들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겠다는 큰 목적을 품지만, 그 길에서 선택하는 방법은 늘 간단치 않았습니다. 이상은 고귀했지만, 현실은 그 이상을 깨끗하게 실현할 수 있는 길을 쉽게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부분이 유난히 인상 깊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현실 속에서도 "좋은 결과를 위해서라면 조금은 무리해도 괜찮지 않을까?"라는 유혹이 늘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학창 시절 시험 준비를 위해 친구와의 약속을 어긴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제게는 성적이라는 결과가 가장 중요했기에 그 선택이 정당하게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약속을 지키지 않은 행동은 친구의 마음을 상하게 했고, 그 흔적은 오랫동안 남았습니다. 결과적으로 저는 시험에서 좋은 점수를 얻었지만, 그 과정에서 잃은 것은 더 큰 가치였습니다.
작품 속 인물들의 모습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옳은 목적을 향해 가는 길에서 수단이 언제나 깨끗할 수는 없는 현실을 작품은 끊임없이 드러내며, 그 불편함을 우리 눈앞에 놓아둡니다. 그리고 그 불편함은 단순히 극적인 설정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며 직면하는 크고 작은 딜레마와 닮아 있습니다.
선택 뒤에 남는 책임
결국 사람을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옳고 그름의 단순한 문제보다도, 선택 이후에 남는 책임입니다. 코드기어스 속 인물들은 매 순간 결정을 내렸지만, 그 결정이 불러온 결과는 언제나 무겁게 그들을 짓눌렀습니다.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내린 선택이 다른 이의 상실로 이어지기도 했고, 대의를 위한 결정이 개인적인 고통을 낳기도 했습니다.
저는 이 부분을 보며 "정의는 아마 선택 그 자체보다, 선택 이후에 무게를 어떻게 짊어지느냐에 달린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 역시 사소한 선택이 의도치 않게 누군가에게 상처가 된 경험이 있습니다.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가 상대방에게 오래 남는 상처가 되었고, 그 사실을 뒤늦게 알았을 때 깊은 후회가 찾아왔습니다. 그때 느낀 건 단순한 미안함이 아니라, 내 선택이 만들어낸 결과에 대해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는 무게였습니다.
작품 속 인물들도 결국 같은 무게를 감당해야 했습니다. 정의를 향한 길은 언제나 아름다운 말로 포장되었지만, 그 안에는 늘 책임이라는 그림자가 뒤따르고 있었습니다. 그 점에서 저는 코드기어스가 단순히 이상적인 정의를 그리는 작품이 아니라, 정의를 이루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마주하게 되는 고통과 책임의 실체를 보여주는 작품이라 느꼈습니다.
결론: 완벽한 옳음은 존재할까
코드기어스는 "과연 완벽한 정의가 존재할까?"라는 물음표를 던집니다. 작품은 그에 대한 명확한 답을 내리지 않습니다. 대신 서로 다른 정의가 충돌하며 만들어내는 복잡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줍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살아가면서 내리는 수많은 선택들이 결코 흑백처럼 단순히 옳거나 그른 것으로 나눠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습니다. 다만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든 그 이유를 분명히 하고, 그 결과에 대해 책임을 끝까지 지려는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완벽한 정의는 존재하지 않을지 몰라도, 책임을 회피하지 않는 자세가 결국 우리를 더 인간답게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