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 〈진격의 거인〉은 단순한 거인과 인간의 대결을 넘어서, 인간 본성, 자유, 증오, 복수라는 보편적이고 무거운 주제를 다루며 전 세계적으로 강렬한 이슈를 일으킨 작품입니다. 그 중심에는 주인공 에렌 예거가 있습니다. 그는 이야기의 처음부터 끝까지 가장 극적인 심리적 변화를 겪는 인물이며, 그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작품이 던지는 철학적 질문을 깊이 탐구할 수 있습니다. 단순히 “거인을 없애겠다”는 소년의 분노에서 시작해서, 세계를 상대로 싸우는 비극적 지도자로 변모하기까지 에렌의 심리 변화는 복잡하면서도 인간적인 여정들을 보여줍니다. 이번 글에서는 그의 내면이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단계별로 살펴보고, 그 변화가 의미하는 바를 정리해 보겠습니다.
어린 시절: 자유를 향한 순수한 갈망
에렌은 거대한 벽으로 둘러싸인 세계에서 태어났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벽은 안전을 보장하는 상징이었지만, 에렌에게는 그것이 곧 속박이었습니다. 그는 늘 바깥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갈망을 품으며, “왜 우리는 갇혀 있어야만 하는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반복적으로 강조되는 “자유”라는 단어는 그의 정체성과 행동의 핵심적인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이때의 에렌은 단순히 세상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했던 순수한 소년이었으며, 아직 폭력이나 증오보다는 꿈과 호기심이 더 강한 시기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갈망은 곧 비극을 만나면서 극단적인 방향으로 뒤틀리게 됩니다.
어머니의 죽음: 복수심의 발단
에렌의 삶을 송두리째 바꾼 사건은 어린 나이에 목격한 어머니의 죽음이었습니다. 거인에게 어머니를 잃는 장면은 단순한 상실감을 넘어서, 에렌의 심리에 깊은 균열을 남겼습니다. 그는 그 순간부터 “모든 거인을 몰살하겠다”는 맹세를 굳게 다짐합니다. 이 결심은 어린 정의감과 결합해 곧 극단적인 집착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이전까지 자유를 향한 막연한 동경이었던 에렌의 내면 상태는, 이 사건을 계기로 복수심과 증오라는 구체적이고 폭발적인 에너지로 바뀝니다. 이때부터 에렌은 단순한 소년이 아니라, 특정 목표에 집착하는 인물로 변모하기 시작합니다.
조사병단 시절: 현실과 이상 사이의 괴리
조사병단에 합류한 이후, 에렌은 자신이 꿈꾸던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커다란 괴리를 경험합니다. 그는 거인의 힘을 얻게 되었지만, 그 힘은 동료들에게는 두려움과 불안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동료들이 자신을 신뢰하면서도 동시에 경계하는 시선은 에렌에게 정체성의 혼란을 주었습니다.
“나는 인간인가, 아니면 거인인가?”라는 질문이 그의 내면을 끊임없이 괴롭혔을 겁니다.
이 시기 에렌은 자유를 향한 갈망과 동료, 그리고 사회의 기대 사이에서도 깊은 갈등을 겪습니다. 이는 그를 단순한 복수심의 화신이 아닌, 내적 갈등을 지닌 입체적인 인물로 만듭니다.
바다를 본 순간: 일순간의 희망, 그러나 복수심
오랜 전투 끝에 벽을 넘어 바다에 도달했을 때는, 에렌은 잠시나마 희망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바다 너머에도 더 거대한 적이 존재한다는 엄청난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이 깨달음은 에렌의 세계관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게 됩니다. 이제 그의 목표는 단순히 ‘거인’을 몰살하는 데 그치지 않으며, 세계 전체를 적으로 돌리는 단계로 확장됩니다. 개인적인 복수심은 민족적·이념적 투쟁으로 바뀌었으며, 에렌은 점점 냉혹한 현실주의자로 변해갑니다. 이 순간은 에렌이 다시는 소년 시절로 돌아갈 수 없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일 것입니다.
최종 국면: 자유 vs 파괴
이야기의 후반부에서 에렌은 더 이상 동료조차도 완전히 신뢰하지 않습니다. 그는 “모두를 지켜야 한다”는 정의감을 내세우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선택한 길만이 옳다”는 독단적으로 변질하게 됩니다. 자유를 향한 갈망은 결국 타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폭력으로 이어지며, 이는 진격의 거인이 던지는 가장 큰 아이러니입니다. 에렌은 자유를 위해 싸웠으나, 그 과정에서 수많은 자유를 빼앗는 자가 되어버렸습니다. 이 역설은 에렌이라는 캐릭터를 비극적으로 만드는 핵심 포인트입니다. 결국 그는 동료들의 지지마저 잃어가면서, 자신의 신념을 최종적으로 밀어붙이는 길을 선택합니다. 이는 단순한 개인적 비극이 아니라, 자유라는 가치가 얼마나 복잡하고 모순적인지를 보여주는 서사의 정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결론: 인간 심리의 복잡성을 담은 캐릭터
에렌 예거의 심리 변화는 호기심 → 분노 → 갈등 → 절망 → 집착이라는 흐름으로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그는 자유를 꿈꾸던 순수한 소년에서 시작해, 복수와 증오에 사로잡힌 전사로써, 그리고 세계 전체를 상대로 한 비극적 지도자로써 변해갔습니다. 이 여정은 단순한 성장 서사에서 머무르지 않고, 인간은 어디까지 자기 신념을 정당화할 수 있는가, 자유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가라는 철학적 질문을 던집니다.
〈진격의 거인〉이 단순한 액션 애니메이션을 넘어 명작으로 평가받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깊이 있는 심리 묘사와 사유의 여지에 있을 겁니다. 에렌은 영웅도 악인도 아닌, 자유를 갈망하면서도 파괴를 선택한 인간으로서, 우리에게 불편하면서도 중요한 질문을 남기며 막을 내립니다.